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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을 아낀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유퀴즈온더블럭'의 김민지 영양사 에피소드

Abigail 2021. 2. 5. 12:00

 

내가 책임지고 리드하고 돌봐야 할 존재는 원론적으로는 사실 내 인생 단 하나 뿐.

 

그런데도 하루 하루 지나가는 일상들 속에서 그 하나, "나"를 "나"답게 오롯히 지켜내는 게 힘에 부친다고 느끼곤 한다. 반짝 반짝 환한 태양처럼 따뜻하게 빛나서 내 주변을 안아줄 거라는 것이 어린 시절의 꿈이었는데 지금의 나는 아슬아슬하게 생명을 겨우 부지하고 있는 촛불인 것 같기도 하고. 

 

사는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 대로 살고 싶다고 대학교 시절, 그렇게 외쳤건만, 분명 나는 많이 찌들었고 일그러졌고 해졌다.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뻔뻔하게 말하는 나의 하루는 정말 "최선"이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곤 한다. 이렇다할 벽돌 한장 쌓지도 못했으면서(혹은 않았으면서) 내 벽돌이 얼마나 무거운지 못생겼는지 왜 다른 사람들의 벽돌은 훨씬 더 가벼운지 징징대는데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았는지 힐난해보기도 한다.


 

유튜브에 추천 영상으로 뜬 '유퀴즈온더블럭'의 김민지 영양사와의 인터뷰 에피소드를 봤다. 세심한 집중력을 요하는 프로젝트를 3시간동안 자리에 꾹 앉아서 끝낸 이후, 커피 한 잔 마시면서 가볍게 볼만한 영상으로 틀었던 것이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커피는 두모금 이상 못마셨다. 

 

 

 

코끝이 찡해진 유키즈온더블럭 김민지 영양사 에피소드. 이런게 정말 '최선'이다. 

 

 

한국 땅을 떠나기 전, 아주 잠깐 학교 급식을 먹었던 경험이 있다. 맛있었던 기억은 없다. 학교 급식이라면 맛없는 반찬에 건더기도 별로 없는 국이 주가 되는 배고픔을 달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예산이 적어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단정했었던 것 같았다.

 

김민지 영양사가 이렇게 눈이 휘둥그레 질만큼의 놀라운 급식을 제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해주고 싶어서였다고 했다.마치 티비에서 나오는 랍스터와 대게, 캐비어 등은 드라마속 잘나가는 주인공들만 먹는 것이 아닌, 너네는 그런 가상의 인물들보다 훨씬 예쁘고 소중하니 경험해보라는 것과 같이. 

 


 

이런 특식을 만들어주기 위해선 발품도 많이 팔아야했고 평소 지출을 위한 계산도 여러번 했었어야 했단다. 야근도 자주 했고. 한번은 밤을 새서 천백명의 학생들을 위해 바나나에 하나하나 돌고래 표정을 그렸단다. 그걸 보고 좋아해줄 학생들의 얼굴을 그리면서.

 

 

 

작은 바나나 하나에도 애정과 마음이 잔뜩이다.

 

 

 

 

지금은 근무하던 학교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셨단다. 에피소드 말미에 김민지 영양사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쓴 학생들의 편지가 나오는데 어느 학생이 쓴 편지가 제법 긴 시간동안 화면에 떠있었다. 따로 자막이 있거나 부연 설명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학교에서 안좋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너무 속상해하지 마시고 다 잊으셨으면 좋겠다"라는 메시지였다. 

 

내가 너무 세상의 때를 탄 건지 모르겠다.🤔 '학생들이 이런 좋은 식사를 하는 것에 불만을 가진 누군가의 악하고 못된 방해가 아니었을까'라는 예상이 들었다. 정해져있는 규칙을 어기지 않고 최대의 퍼포먼스를 뽑아내면 모든 이들이 다 박수쳐줄 것이라고 믿을 만큼 더이상 어리숙하진 않다. 백번 잘한일도 누군가는 돌을 던진다.

 


 

 

못해도 욕, 잘해도 욕이라면  '욕 안먹는 것'이 잘하고 못하고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내 스스로를 잘 지키기 위해서, 내 인생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 잘하고 욕먹는 게 당연히 옳은 선택이다.

 

짧았지만 제법 오랫만에 코끝이 찡해지고 목이 잠기는 영상을 보았다. 덕분에 오늘 하루, 나의 생각과 마음의 밀도가 좀 더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