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 선수의 경기를 눈 앞에서 실제로 볼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데에서 오는 사적인 덕심을 더한 안경을 벗고 보아도 그 커다란 아이스링크를 자유롭게 훨훨 누비는 김연아 선수의 경기를 보면서, 월드클래스는 정말 다르구나, 라면서 내내 감탄을 했었던 기억은, 한참의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생생하다.
선수들 모두 각자가 대표하는 나라의 국기를 가슴에 달고 치루는 경기 만큼, 김연아 선수 이전에 출전한 선수들의 경기를 보면서도 "우와, 저게 가능해?" 싶은 기술에 힘껏 박수를 보냈지만, 김연아 선수의 경기는 말 그대로 "어나더 레벨", 완전 다른 차원이었더라, 라고 밖에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 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보며 했던 생각이 있다.
저렇게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다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김연아도 월드클래스가 되기 위해서는 월드클래스의 코치 아래에서 월드클래스의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나의 작은 인생에서 나를 THE BEST VERSION OF ME를 만들기 위해서도 그만큼의 높은 수준의 코칭과 훈련이 필요하겠구나, 라는.
김연아처럼 어느 한 분야에 특출난 두각을 드러내거나 하지는 않는, 99%의 일반인의 범주에 속하는 나이지만, 그래도 나라는 존재는 이 긴 인류 역사상 딱 하나뿐이기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가 안아주고 예뻐해주고 잘 키우면서 데리고 살아야지, 라는 생각에 한동안은 열심히 책도 읽고 칼럼도 찾아 읽고 했었던 기억.
그러다가 한참동안 느슨해졌었는데 얼마전, 이어령 선생의 예전 기사를 우연히 찾아보고는 다시 저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것들을 소망하면서 살아가는 듯 하다.
자신에게 보람감과 성취감, 행복감을 안겨주는 career활동,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안정적인 경제적 능력, 육체적, 정신적 건강.
하지만 정말 이러한 것들을 가지고 누리고 살아가는 이들은 많지 않다.
불가항력적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치더라도 원하는 사람들에 비해 매우 적은 사람들만이 저런 것들을 successfully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아마 꾸준함과 그렇지 못함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Consistency vs. Inconsistency.
예를 들어,
건강한 몸을 위해서 매일같이 꾸준하게 나쁜 음식의 섭취는 줄이고 좋은 음식의 섭취는 늘리는 일과 운동,
안정적인 경제적 능력을 위한 꾸준한 자기 계발과 돈에 대한 공부, 가계부 쓰기와 같은 재정 관리와 같은 '꾸준함' 말이다.
내 하루의 시간표를 되돌아보니 누구에게 보여주기 매우 부끄러울 정도로 게으르고 들쑥날쑥한 모습이 너무 많다.
예전에 어느 책에서 읽은 구절이 떠오른다.
내가 탄 배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노를 저어야 하는데
그저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만이 그 배를 목적지에 닿게 해주겠지, 라는 생각은 미친 생각이라는 말.
좀 더 성실하게 살지 못했던 나를 반성하며, 약해진 팔과 다리를 단단히 하고 다시금 내 인생의 노를 힘껏 저어야겠다.
2019년도 이어령 선생이 조선일보와 한 인터뷰의 내용은 가만히 숨도 고르면서 읽어볼 정도로 좋은 내용이 많다고 느껴져서 여기에 부분적으로 옮겨오려고 한다.
-그런데 요즘엔 탄생 자체를 비극으로 보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인간은 내 의지로 세상에 나오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래서 안 태어나는 게 행복했다, 어쩔 수 없이 태어났으니 빨리 사라지는 게 낫겠다, 이렇게 반출생주의적인 사고를 하는 건 무의미해. 제일 쉬운 게 부정이에요. 긍정이 어렵죠.
나야말로 젊을 때 저항의 문학이다, 우상의 파괴다, 해서 부수고 무너뜨리는 데 힘을 썼어요. 그런데 지금 죽음 앞에서 생명을 생각하고 텅 빈 우주를 관찰하면, 다 부정해도 현재 내가 살아 있다는 건 부정할 수가 없어요. 숨을 쉬고 구름을 본다는 건 놀라운 일이에요."
-그 놀라움의 힘으로 또 무엇을 보셨나요?
"생명은 입이에요. 태내에서도 생명은 모든 신경이 입으로 쏠려 있어요. 태어난 후엔 그 입으로 있는 힘껏 젖을 빨지요. 그 입술을 비벼 첫 소리를 내요. "므, 브…" 가벼운 입술 소리 ㅁ으로 ‘엄마, 물’을, 무거운 입술소리 ㅂ으로 ‘아빠, 불’을 뱉어요. 물은 맑고 불은 밝잖아. 그런데 그 ㅁ과 ㅂ이 기가 막힌 대응을 이루는 게 바로 우리 한글이에요. water와 fire로는 상상도 못할 과학이야. 놀랍죠."
-신기합니다. 어떤 천재는 단명하고 어떤 천재는 장수하는 걸까요?
"오래 살면 생각이 계속 달라져요. 내가 존경하는 이들은 다 일찍 죽었지. 이상도, 랭보도, 예수도. 단명한 이들의 공통점은 번뜩인다는 것. 둔한 게 없어요. 면도날로 소를 잡았지. 소를 잡으려면 도끼를 써야 하는데, 이상은 날카로운 면도날로 단번에 그었어요. 반면 괴테는 80살까지 살았어요. 도끼날 같았지. 도끼로 우주를 찍어 내린 사람이었어요. 형태학, 광산학까지 했잖아.
천재는 악마적 요소가 있어요. ‘파우스트'를 봐요. 파우스트는 신학을 했던 성스러운 사람이었어요. 사색적인 그가 한계에 부딪혀 자살하려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지만, 결국 신은 그를 구원해요. 나는 서른이 지나고 모델이 없었는데, 그때 잡은 게 괴테였어. 괴테는 바이마르의 재상을 지냈죠. 그런데 나도 문화부 장관을 했잖아. 바이마르 인구보다 한국 인구가 더 많으니, 나는 괴테한테 쫄지 않아요(웃음)."
-선생이 한 말, 쓴 글, 해오신 일은 그 영역이 너무 방대해서 입이 벌어질 때가 많습니다.
"괴테도 유니버설맨이었어요(웃음). 동과 서를 알았고 성과 속을 알았고, 인공지능인 호몬클루스까지 써서 미래의 정황을 보여줬지요.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그랬죠. 코끼리의 전체를 보려면 그들처럼 제너럴리스트가 돼야 해요. 코만 만지고 코끼리를 봤다고 하면 엉터리야. 그렇게 인간과 학문의 전체를 보려고 했던 르네상스맨이 다빈치와 괴테였어요. 그런데 제너럴리스트들은 종종 욕을 먹어. ‘전공이 뭐냐’는 거죠. 허허."
-전공의 구분이 없으셨지요. 언어기호학자이면서 언론인, 비평가이면서 소설가, 시인, 행정가, 크리에이터로 살아오셨어요. 최종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우물 파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단지 물을 얻기 위해 우물을 파지는 않았어요. 미지에 대한 목마름, 도전이었어요. 여기를 파면 물이 나올까? 안 나올까? 호기심이 강했지. 우물을 파고 마시는 순간 다른 우물을 찾아 떠났어요. ‘두레박'의 갈증이지요. 한 자리에서 소금 기둥이 되지 않으려고 했어요. 이제 그 마지막 우물인 죽음에 도달한 것이고."
-뒤늦게 깨달은 생의 진실은 무엇인가요?
"모든 게 선물이었다는 거죠. 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어요.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처음 받았던 가방, 알코올 냄새가 나던 말랑말랑한 지우개처럼. 내가 울면 다가와서 등을 두드려주던 어른들처럼. 내가 벌어서 내 돈으로 산 것이 아니었어요.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고."
-87년간 행복한 선물을 참 많이 받으셨지요?
"그랬죠. 산소도, 바다도, 별도, 꽃도… 공짜로 받아 큰 부를 누렸지요. 요즘엔 생일케이크가 왜 그리 그리 예뻐 보이는지 몰라. 그걸 사 가는 사람은 다 아름답게 보여(웃음). "초 열 개 주세요." "좋은 거로 주세요." 그 순간이 얼마나 고귀해. 내가 말하는 생명 자본도 어려운 게 아니에요. 자기가 먹을 빵을 생일 케이크로 바꿔주는 거죠. 생일 케이크가 그렇잖아. 내가 사주면 또 남이 사주거든. 그게 기프트지. 그러려면 공감이 중요해요. 공의가 아니라, 공감이 먼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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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마지막 인터뷰 "죽음을 기다리며 나는 탄생의 신비를 배웠네"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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