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 주황색의 바탕에 검은색 땡땡이가 합해진 표지가 강력하게 시선을 끌어서 빼곡하게 책이 들어선 중고서점의 책장에서 가장 먼저 손이 갔고, 책 뒷편에 쓰여져있던 말콤 글래드웰의 추천사와 책의 저자가 내가 살고 있는 캐나다 토론토, 토론토 대학교의 경영대 총장(dean of the Rotman School of Management at the University of Toronto)을 지내셨던 분이 쓴 책이라는 것을 알고 그대로 계산대까지 가져갔던 책이다.
경쾌한 책의 표지와 책 뒷편의 노트 불포함, 180여페이지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비교적 얇은 책이어서 금방 읽겠지 했는데 결론적으로 끝까지 다 읽는데 한달이 걸렸다. 책 내용이 나빠서는 절대 아니고,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에 대한 원론적이고 광범위한 철학적인 내용까지 포함하며, 많은 인사이트들이 비교적 건조한 문체로 압축되어 있어서였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 내가 이 저자의 말을 잘 따라가고 있는지 자주 되짚어봐야 하는 책이었다.
빅데이터와 같은 데이터사이언스, 데이터과학의 급부상은 우리에게 과거를 철저히 분석함으로써 좀 더 나은 미래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기대를 준다. 하지만 과연 항상 데이터가 옳은 것일까? 데이터는 과거와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기본으로 한다는 전제가 있다. 기존의 것들을 좀 더 나아지게 갈고 닦는데에는 분명 유용한 틀이 되겠지만, 결이 다른 새로운 챕터, 새로운 혁신을 가져오지는 못한다는 약점이 있다.
스티브잡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Some people say, "Give the customers what they want."
But that's not my approach. Our job is to figure out what they're going to want before they do.
I think Henry Ford once said, "If I'd asked customers what they wanted, they would have told me, 'A faster horse!'" People don't know what they want until you show it to them. That's why I never rely on market research. Our task is to read things that are not yet on the page.”
말과 마차가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시절, 모든 결정의 방법을 데이터에만 의존했다면 우리는 어떻게하면 말을 더 빨리 달리게 할 수 있을까에만 치중했을 것이고 새로운 혁신의 시작, 자동차는 발명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핸드폰은 멀리 있는 누군가와 통화할 수 있게 도와주는 물건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게임도 하고 이메일도 보내고 쇼핑도 하고 사진도 찍을 수 있는 현재의 스마트폰은 가능하기 힘들었을 거다.
혁신적이지만 성공의 가능성은 낮은 validity와 안정적이지만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인 reliability 사이에서, 어떻게해야 개인과 공동체가 적절한 발란스를 구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책이다. 저자의 관점을 제시하는 책의 구성방식, 글의 표현 방식이 더 좋았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내용도 어렵고 글의 표현도 딱딱했지만 그럼에도 제법 좋은 생각의 자양분이었다. 😌
The Design of Business: Why Design Thinking is the Next Competitive Advantage![](//ir-na.amazon-adsystem.com/e/ir?t=sensulato153-20&l=am2&o=1&a=1422177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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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번역본: 디자인 씽킹 바이블
카테고리: 경제, 경영
Amazon.com 별점: (포스트 작성일 기준) 4.4/5, 리뷰 126개
Goodreads 별점: (포스트 작성일 기준) 3.95/5, 리뷰 1,818개
허먼밀러(Herman Miller)는 오피스용 가구들을 제작하는 유명 글로벌 가구회사다. 미국 미시간에 본사가 있다. 1984년, 허먼밀러는 빌 스텀프(Bill Stumpf)와 돈 채드윅(Don Chadwick), 두 외부 디자이너와 콜라보를 통해 '더 이쿠아 체어(The Equa Chair)'라는 새로운 사무용 의자를 세상에 내놓는다. 당시 최초로 인체공학적 디자인을 도입한 의자로 세상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타임지는 이 의자를 'Design of the Decade(10년동안 가장 뛰어난 디자인)'이라고 설명했다. 이 의자는 오랜 시간동안 세계 전역의 많은 사무실에서 애용되었다.
시간이 지나 이 둘은 또다시 협업 프로젝트를 위해 만났다. 더 이쿠아 체어가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기존의 디자인을 발전시키는 방향이 아닌, 백지에서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디자인을 위한 프로젝트였다.
두 디자이너들은 하루종일 의자에 앉아 업무를 보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그들의 앉는 자세를 상세하게 관찰하고 어떠한 움직임을 하는지, 왜 하는지에 대해 분석하고 기록했다. 당시 사무실에서는, 푹신한 패딩이 두껍게 처리되어 있는 커다란 의자일 수록 좋고 비싼 의자라는 인식이 강했었다. 기업에서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일수록 크고 두껍게 쿠션이 들어간 의자를 앉았는데 이는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인식표이기도 했다.
그러나 두 디자이너들은, 아무리 푹신한 의자라도 앉은 사람이 모두 때때로 무의식적으로 포즈를 바꾼다는 것을 관찰을 통해 알아내었다. 가죽의자는 보기에 좋고 푹신하기는 했지만 통풍에는 매우 취약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신체의 열을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고 그대로 의자의 재질에 전달되었기 때문에 앉은 사람들은 자꾸만 포즈를 바꾸면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열을 방출하려고 했다.
'더 에론 체어(The Aeron Chair)'는 기존의 두꺼운 패드 디자인을 버리고 열의 방출이 용이한 매쉬(Pellicle) 재질을 선택해 이러한 불편함을 근본적으로 해결했다. 이 의자의 프로토타입이 공개된 날, 포커스 그룹의 반응은 냉담했다. 기존의 '좋은 의자'와 거리가 있는 이 새로은 의자의 디자인에 난색을 표하며 너무 못생겼다고 지적했다.
포커스그룹에서 좋지 않은 피드백을 받으면 일반적인 경우, 많은 기업들은 그 프로젝트를 파기하거나 그들의 피드백에 따라 디자인을 완전히 뜯어 고치곤 한다. 하지만 허만밀러는 달랐다. 시장 조사와 포커스그룹의 데이터는 디자이너의 결정을 뒤엎는 권한이 없었다. 디자인과 인체공학에 대한 깊은 지식을 바탕에 면밀한 관찰과 연구를 더해 나온 '혁신'은, 과거의 경험, 기존의 데이터로 성공의 여부를 판가름할 수 없음을 허만밀러는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허만밀러는 이 새로운 혁신에 그린라이트를 보냈다.
결과는? 엄청난 대성공. 수많은 디자인상을 휩쓸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 모마: Museum of Modern Art in New York)에 영구 전시자리를 수여받기도 했다.
Ironically, the chair that didn't look like a chair became the iconic representation of a modern chair, which every new ergonomic chair had to resemble.
혁신은 데이터로 예상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 사례가 되었다.
올해 초, 마우로 기옌 교수가 쓴 '2030 (2030 축의 전환)'을 읽으면서 내가 속한,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완전히 다른 챕터로 넘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2021/02/01 - [영어원서리뷰] 2030년이 궁금해? 그럼 이 책은 어때?
[영어원서리뷰] 2030년이 궁금해? 그럼 이 책은 어때?
"I urge that we avoid linear thinking, sometimes called vertical thinking. Instead, I suggest we approach change laterally." "(우리앞에 다가올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수직적 사고, 혹은 직선적 사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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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이라는 단어는 때로는 '무모함', '경솔함'과 같은 이미지를 주기도 한다. 아무렇게나 질러본다고 모든 것이 '혁신'이 될 수는 없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 그렇다고 실패를 두려워하여 과거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한 데이터의 과도한 의지는 다람쥐 쳇바퀴와 같은 제자리 걸음 발전만을 야기할 지 모른다. 실패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혁신을 위한 전제조건일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변화를 원한다면 성공을 하기 전에 겪어야 하는 실패는 당연히 따라오는 '세트'라는 것을 다시금 되짚는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중심을 잘 잡는 것은 고되고 힘든 일이지만 그 모든 노력의 가치가 충분한 좁은 길이라는 것을 또 한번 마음에 새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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