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The first draft of anything is shit.”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 무기여 잘 있거라 (A Farewell to Arms),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 등과 같은 굵직한 작품들으로 유명한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가 한 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말은 아놀드 사무엘슨(Arnold Samuelson)이 쓴 'With Hemingway: A Year in Key West and Cuba (한국어 번역본: '헤밍웨이의 작가 수첩')'에 나오게 되면서 유명해졌습니다. 이 책은 헤밍웨이아 사무엘슨, 두 사람 모두 작고한 뒤 출판되었기 때문에 정말 헤밍웨이가 정확히 저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극단적으로 헤밍웨이가 저런 말을 하지 않았고 사무엘슨이 지어낸 말이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사실 저 말은 세상의 모든 분야를 관통하는 '진리'에 가까워 보입니다. 첫 초고부터 일필휘지로 엄청난 작품을 뽑아낼 수 있는 천재가 아닌 이상, 99.99% 프로의 사람들은 연습과 경험을 거듭하며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글쓰기도, 퇴고를 거듭할 수록 글의 퀄리티는 더 높아지기 마련이고요.
'Sapiens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2018년의 그의 블로그 글에서 미래에 필요한 핵심 4가지 스킬들 중 하나로 '비판적인 사고(Critical Thinking)'을 꼽았습니다. 정보의 홍수속에서 가짜 정보와 진짜 정보를 구별해내고 많은 매체들의 가면들을 꿰뚫어보기 위해서는 비판적인 사고가 필수적일 것입니다.
2021/02/15 - '사피엔스' 저자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미래를 위한 4가지 키워드
이런 비판적인 사고를 가지기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는 독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독서는 작문, 즉 글짓기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꼭 전문 작가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읽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을 종이 위에 글로 풀어내다 보면 자잘한 점들처럼 흩어졌던 상념의 조각들 사이에 다리가 놓이고 그것을 통해 긴밀하게 연결되며 단단히 조여지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평생을 두고 갈고 닦아야 할 필수 스킬들 중 하나가 어쩌면 읽기와 쓰기가 아닐까요.
서론이 길었습니다.
최근 글짓기에 관한 재미있는 책을 하나 읽었습니다.
Several Short Sentences About Writing
한국어 번역본: 짧게 잘 쓰는 법
카테고리: 인문, 작문, 글쓰기, 글짓기
Amazon.com 별점: (포스트 작성일 기준) 4.4/5, 리뷰 344개
Goodreads 별점: (포스트 작성일 기준) 4.17/5, 리뷰 1,618개
우선 이 책은 '목차'가 없습니다.
글짓기에 관한 저자의 생각을, 마치 친구가 친구에게, 글쓰기를 더 잘하고 싶어하는 동료에게 이야기하듯 털어놓습니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마냥 느슨하다거나 가벼운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이 책의 저자 Verlyn Klinkenborg는 뉴욕타임즈의 편집국에 속한 나름 글짓기의 베테랑입니다. 이 책은 이 책의 제목 'Several Short Sentences about Writing'대로 글짓기에 관련한 묵직한 생각들을 짧은 문장으로 툭툭 털어놓습니다. 굉장히 간단하면서 직선적인 문장인데 밀도가 높아서, 문장들 뒤로 작가가 오랜 시간동안 고민해왔을 글짓기에 관한 고뇌를 느낄 수 있는 듯 해요.
책의 앞부분은 툭툭 던지듯이 글짓기에 관한 저자의 생각을 얘기하다가 뒤에서는 조금 무거워집니다. 저자가 선택한 예문들을 주면서 이렇게 이렇게 읽어보고 생각해보라,라고 독자에게 과제를 던집니다. 유명 작문 선생님이 말씀해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따라해보니 이 분이 말씀하시는 것들 - 글이란 내가 가진 단순한 욕망이나 생각들을 분출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이 세상에 내보이는 것이라는 것, 백지에 글을 처음으로 쓰는 것과 그 글을 고치는 것은 결국엔 똑같은 '작문'이라는 것, 그리고 글을 읽을 때 단순히 어떠한 테크닉만을 보지만 말고 그것을 넘어 왜 작가가 이러한 표현법과 문체로 그 장면을 묘사했는지 생각하고 고민해보라는 것 -이 조금 더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한국어로 번역되었다고는 하는데, 글쎄요...🤔
'글쓰기'에 있어서 만국 공통의 가르침은 분명 있겠지만 이 책의 내용들 중 상당수가 영어의 특수성도 어느정도 관련되어 있다고 느껴서요. 어쩌면 원어로 보는 게 더 이해가 쉽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이 책은 밀도는 높지만 부드럽게 쓰여져있어 읽기에 부담이 없거든요. 그래서 영어가 아주 능숙하지 않더라도 읽기에 다른 책들에 비해서 비교적 괜찮을 것 같기도 해요.
개인적으로 괜찮다고 느꼈든 여러 문장들 중 두 개를 소개하면서 글을 마무리 해 보겠습다. 번역은 제 마음대로 의역입니다. 😎
Start by learning to recognize what interests you. Most people have been taught that what they notice doesn't matter. So they never learn how to notice, not even what interests them.... Is it possible to practice noticing? I think so. But I also think it requires a suspension of yearning and a pause in the desire to be pouring something out of yourself. Noticing is about letting yourself out into the world, rather than siphoning the world into you in order to transmute it into words. (pg. 38-39)
당신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을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합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을 흥미를 자극하는 것이 무엇인지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배워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변화를 알아차리는 법을 알지 못하며, 심지어 무엇이 당신에게 흥미롭게 다가오는 지에 대한 것들도 알지 못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알아차리는 것들을 연습을 통해서 배울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저는 이러한 '알아챔'을 위해서는 우리가 평소 동경하던 것들과 자기 자신에게서 뭔가를 쏟아내고 싶은 욕망을 잠시 정지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알아차리는 행동'은 여러분의 세상을 글로 옮기기 위해 그 세상을 자신의 세상속으로 빨아들이는 것이 아닌, 스스로를 세상에 내보내는 것입니다.
Writing is a way of ordering perception, but it's just as often a reordering of perception in a form peculiar to the writer's discovery. Telling takes the order you want it to, which may have nothing to do with the order that seems "natural"... The order of what you're writing is determined by your interest in the material and the sense you make of it and by your presence to the reader. You're not just filling space now. (pg. 123-124)
글쓰기는 인식의 순서를 정하는 하나의 방법이지만, 또한 그것은 종종 작가의 발견에 따른 특유한 형식을 바탕으로 하는 인식의 재배치가 되기도 합니다. 보통 우리가 말할 때에는 말하고 싶은 순서를 따르는데, 사실 이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순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글쓰기의 순서는 대상에 대한 당신의 흥미와 감각 그리고 당신의 독자들에게 있어 의미하는 당신의 존재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제 당신은 단순히 빈칸을 채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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