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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책 서재: Non-fiction

[영어원서리뷰, 서평] Being Mortal: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고찰, 그리고 산다는 것의 의미

by Abigail 2021. 2. 11.

 

 

60대이신 우리 엄마는 공대를 나오셨다.

 

위로 언니들이 줄줄이 있는 집안에서 예쁨받는 막내딸로 태어난 엄마는, 4년제 장학금을 타고 당시에는 여자보기가 하늘의 별따기와 동급이었다던 공대에 당당하게 입학을 했다. 이모들은 막내 여동생이 어려서부터 '모험가'의 기질이 다분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것을 도전해보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는 미술의 특기를 살려 토론토의 유명 미대의 평생교육원 클래스를 듣기도 하시고 장구, 핸드벨, 리코더 등을 전문가에게 제법 오랜시간 배우기도 하셨다. 한번은 실용적인 조각상을 만들어보겠다며 시멘트를 한포대기 사오셔서 기하학적인 화분을 만드시더니 작년말에는 비닐하우스를 만드시겠다며 혼자 옮기기도 힘든 비닐뭉치와 철사를 잔뜩 사오시기도 했던 이력이 있다. 평생 나보다 더 건강하시고 에너지 넘치실 줄 알았던 엄마가 작년부터는 조금씩 아프셨다. 방광염, 관절염, 허리 디스크로 병원에 갔어야했다.  

 

 

내게는 올해 4월이 되면 11살이 되는 노견, 골든리트리버가 있다. 이름은 제이콥. 

 

이제까지 키우면서 화내거나 짜증을 냈던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본투비 순둥이. 어렸을 때 부터 힘은 남달랐다. 성인남자 팔뚝만한 굵기의 2미터가 족히 넘는 나무를 물고 펄펄 뛰어다녔으며 다람쥐를 쫒아 제법 가파른 산길을 단숨에 올라가는 건 일도 아니었다. 수영과 잠수는 또 얼마나 잘하는지, 바닷가에 풀어놓으면 말리기 전까지는 기분좋게 파도를 넘실넘실 타서 주변 사람들이 신기하다고 사진과 영상을 찍어가기도 했다. 작년 초, 양쪽 앞다리에 관절염이 갑자기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다. 병원에서 관절염 진단을 받자마자 인터넷 검색과 책 등으로 관절염에 좋다는 것들을 엄청 챙겨 먹인 결과 절뚝거리며 걷는 증상은 거의 다 사라졌지만 예전처럼 장거리를 걷거나 뛰지는 못한다.

 

그 어떤 약이나 의술로도 막을 수 없는 나이듦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진. 예쁜 겨울날의 공원에서. 엄마, 노란옷을 입은 제이콥, 그리고 그 아래 8살 말티즈-시츄 믹스견 보리

 

 

 


 

 

 

Being Mortal: Medicine and What Matters in the End

 

 


 

 

한국어 번역본: 어떻게 죽을 것인가

카테고리: 인문, 교양, 사회학, 의학, 수필, 에세이

Amazon.com 별점: (포스트 작성일 기준) 4.8/5, 리뷰 13,491개

Goodreads 별점: (포스트 작성일 기준) 4.44/5, 리뷰 139,948개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자주, 또 깊게 '삶의 유한성'에 대해 생각할까.

 

그 어느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이건만,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준비하는 일은 대다수의 경우, '아직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가장 구석자리로 미뤄두기 마련이다. 죽음은 삶의 가장 큰 적이며 인생의 가장 큰 비극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그것을 똑바로 바라보기 보다는 원래부터 없었던 존재처럼 눈을 감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죽음은 우리들에게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시간에 따른 육체적인 노화로 슬그머니 우리의 삶을 죽음의 그림자로 적시기도 하지만, 갑작스러운 질병 등과 같이 청천벽력인 사고로 오기도 한다. 이 둘의 양상은 매우 다르지만 나타나는 우리의 모습은 크게 다를 바 없어보인다. 

 

티비, 광고, 책, 잡지,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 우리는 질병과 노화는 개인의 노력으로 충분한 극복가능한 것들이라는 메시지를 받곤 한다. 꽉 찬 중년이지만 20대 청년과 같은 얼굴과 몸을 가진 자들을 찾아다니며 조명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희망', '성공', '행복' 등의 개념들을 덧붙여 소개한다. 하지만 전체적인 시각에서,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매우 소수일 뿐, 다수는 질병에 무기력하고 노화에 어스러히 쓰러질 뿐이다.

 

 

 


 

 

 

 

불과 몇십년전만 올라가더라도 자식을 많이 낳고 3세대가 같은 집에 사는 것이 보편적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 책의 저자 아툴 가완디(Atul Gawande, a surgeon, a professor at Harvard Medical School)는 인도계 미국인인데 (부모님이 인도에서 건너온 경우), 과거 인도에 거주하는 조부모를 방문한 여행을 통해 목격했던. 미국과 사뭇 다른 노인을 대하는 풍경을 묘사한다. 인도에서는 과거 한국에서도 그랬던 것 처럼 자식들이 부모를 모시는 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나이가 많은 것을 존중하고 공경하는 문화가 더해져 일부러 자신의 나이를 뻥튀기해서 소개하기도 한다. 가완디의 친할아버지는 맨 땅에서 큰 부를 이룬 대장부였는데 죽기 바로 직전까지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밭을 직접 둘러보는 일을 도맡아했다. 

 

핵가족화 그리고 맞벌이가 사회의 norm이 된 북미사회에서는 노인들이 노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신체 변화로 스스로 행동하는데 어려움을 느낄 경우, 가족들이 보살펴주기 보단 양로원(nursing home)에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완디는 이 '양로원'이 과연 우리의 물리적 불편함을 덜어주는 좋은 시스템일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기숙사실, 혹은 병실처럼 긴 복도 양쪽으로 방이 나뉘어져 있으며  거주인들은 오직 한정된 개인 물품만을 가져갈 수 있다. 개인방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해진 스케쥴에 따라 움직이며 주는 대로 밥을 먹고 카드 게임과 같은 '수동적'인 액티비티로 하루가 채워진다. 안전이라는 이름 아래에 개인이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맘껏 하는 자율성을 빼앗는 모습이다.

 

이러한 일반적인 양로원의 모습이 어느 면에서는 감옥과도 비슷해보인다는 그의 표현에 조금 소름이 돋으면서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양로원은 사실 그 곳에 있는 노인들보다 노부모들을 그곳에 보냄으로써 마음의 부담을 더는 자녀들을 위한 곳일지도 모르겠다.

 

 

 


 

 

 

 

 

 

외과의사로써 가완디는 많은 죽음을 목격했다. 갑작스러운 암의 발병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한 젊은 여성이 있었다. 독한 항암치료를 3번이나 마쳤지만 아무런 효과는 보지 못한 상태였다. 분명 그녀는 삶의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와 환자 가족들, 그리고 의사들 역시 이러한 냉혹한 현실을 제대로 이야기하는 극도로 피하고자 했다. "저 죽습니까?" 라는 환자의 질문에 "아니요, 잘 이겨내봅시다"라고 의사는 대답했지만 현실적으로는 기적이 아니고서야 예정된 수순이 뻔했다. 끝까지 질병에 맞써 싸우는 것이 정말 우리의 유한한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인가,에 대해 가완디는 물음표를 던진다. 확률적으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이 뻔한 상황에서 끝까지 환자를 전장에 밀어넣는 것이 과연 최선의 선택인가, 아니면 환자가 많이 남지 않은 나머지 시간들을 조금이나마 더 고통없고 편안한 상태에서 보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나은가, 라는 disturbing한 고민을 안고 싸움한다. 

 

가장 잘 사는 삶이란 죽음을 생각하는 삶이 아닌, 최선을 다하는 삶 이라는 문구에 우리는 익숙하다. 그러면서 오늘, 더 열심히 일할 것을 종용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죽음을 생각하는 것도 잘 사는 삶의 공식에 꼭 들어가야 하는 필수 부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 책이 좀 더 특별한 이유는 현실성이 떨어질 수 있는 '이상적인' 이론들, 탁상공론적인 성격이 강한 궤변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외과의사로써 본인이 직접 보고 듣고 겪고 생각한 것들을 토대로 자신의 삶 속에 적용하면서 그에 따라오는 세밀한 감정적인 업앤 다운, 깨달음, 인간적인 아픔과 고민등을 매우 솔직하게 털어놓는다는 것이다.

 

그의 부모님 두분은 모두 의사시다. 아버지는 비뇨기과, 어머니는 소아과. 하지만 그의 외과적인 지식도, 부모님들의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의학지식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자신의 아버지의 척수에 매우 희귀한 종양이 크게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말이다.

 

의사로써의 활발한 커리어 외에도 로터리 클럽(Rotary club: 사회봉사와 세계 평화를 목적으로 하는 전문 직업인들의 국제적인 사교 단체)의 임원 활동으로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 활동에 열성적이었고 꾸준한 테니스를 통해 건강을 지켜왔던 그의 아버지였다. 계속되는 목의 뻐근함, 손가락 끝의 얼얼한 느낌으로 찾은 병원에서는 처음엔 '관절염'이라고 진단을 내렸지만 계속 악화되는 증상으로 인한 정밀검사를 통해 발견하게 된 종양은 이미 '완전한 회복의 가능성'의 단계를 훨씬 넘어선 이후였다. 

 

이미 비극적인 카드패는 주어졌다. 문제는 이것을 가지고 어떻게 플레이하느냐였다. 

 

자신과 자신의 부모님들의 의사 커리어를 다 합치면 120년이 되는 시간이건만, 기적이 아니고선 이미 끝이 결론이 지어져있는 길 위에서 그 어느것을 선택하며 그 어느것을 포기할 것인지 매우 껄끄럽고 어려운 대화를 나누기는 절대 쉽지 않았다. 책상의 안쪽에서에서 환자들에게 참혹한 진단을 내리던 의사에서 책상의 바깥쪽, 그 진단을 듣고 사유해야하는 불치병 환자의 보호자로써의 드라마틱한 트랜지션을 그는 세세히 기록한다. 

 

사지마비로 사느니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아버지와는 달리, 어머니는 많은 고통이 따르더라도 그의 생명을 끝까지 붙잡고 싶어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많은 환자들에게서 보여지는 모습을 그는 그의 부모님에게서도 보았다. 숫자적인 삶의 양보다 삶의 질을 선택하고자 하는 환자. 삶의 질을 더 낮추더라도 삶의 길이를 늘리고자 하는 보호자. 그 사이에서 오는 딜레마.

 

마지막 두 챕터를 할애하면서 쓴 그의 아버지 이야기는 한 장 한 장 숨을 죽이고 책장을 넘기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는 나와 내 가족을 투영해보았다. 만약 이런 상황이라면 나는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아니, 어떤 결정을 내려야만 할까. 어떤 결정이 덜 후회가 남을까. 내게 삶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던가. 

 

확실한 것은, 삶의 무한성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커브볼'이 내게도 언제 오리라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담백하면서도 따뜻하고 또 깊은 울림을 주는 문체에 매료되어 허리가 아픈줄도 모르고 코를 박고 읽었다. 죽음과 노화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보지 못한 내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삶의 유한성과 의미를 다시금 떠올리며 고민해본다. 무엇이 과연 잘 사는 삶일까. 내가 원하는 노년의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책 '2030'에서 전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노년인구는 전반적인 사회상을 크게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세상에 한참 뒤떨어져, 우리는 머리속에 여전히 그 옛날 '뒷방 늙은이'의 이미지만을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2021/02/01 - [영어원서리뷰] 2030년이 궁금해? 그럼 이 책은 어때?

 

[영어원서리뷰] 2030년이 궁금해? 그럼 이 책은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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