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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From Abby

이 세상에 완벽한 책은 없다

by Abigail 2021. 3. 26.

 

가장 오래된 기억중의 하나는 제가 아마도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을 시절, 갓난아기인 동생을 보살피는 엄마 옆에 앉아 사촌에게 물려받은 그림책을 읽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림을 보는) 장면입니다. 부모님 두 분 다 지독한 책벌레이셨기에 어릴 적 부터 책은 늘 가까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 때 아는 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전학을 가서 모든 것이 어색하고 까끌하던 시절, 반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책읽기 대회'의 게시물을 보고 거기에 꽂혀 일주일에 두세권씩 지정도서들을 찾아가며 읽은 통에 두 달만에 같은 반 모든 학생들을 제치고 1등상을 받은 경험이 있어요. 

 

그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자면 나이와 관심도에 따라 책의 취향은 자연스럽게 참 많이도 바뀌었지요. 책을 하루라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을 정도라고는 말은 하지 못하겠으나 짬짬히 늘 가까이 하기 위해, 멀리 외출을 나갈 때면 가방속에 책 한 권은 쓱 밀어넣는 습관은 있습니다.

 

책을 읽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이 책의 선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점에서 맨 앞 쪽에 정렬된 책 들 중, 좋은 책들도 많이 있겠으나 마케팅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경우도 많아서 그것만을 골라서 보는 것은 위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것도 누군가의 주관적인 필터링이 들어간 선택들에 의한 결과물이니까요.

 

조금 더 연차와 경륜이 쌓이면 좋은 책을 단박에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겠지만, 그것이 아직 많이 부족한 듯 보이는 현재의 저는 다른 사람들의 추천에 많이 의지하곤 합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호의적인 평가를 받는 고전들, 제가 닮고 싶은 부분이 있는 위인들이 추천하는 책들이 무엇이 있나 살펴봅니다. 

 


 

'좋은 책'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것의 의미를 그 책이 가지고 있는 '가치'에서 찾습니다.

'겸손', '인권', '꾸준한 노력', '좋고 나쁜 것을 구분하는 분별력', '성실(꾸준함)', '협동', '친절함', '인내', '사랑', '희망'.   

굉장히 추상적일 수도 보일 수 있는 이런 가치들을 저는 순진하리만큼 믿고 있습니다. 그것이 비록 지금 나에게 당장 어떤 불편함과 피해를 주더라도 제 인생 하나가 가지는 가치보다 훨씬 크다고 생각하기에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들소의 뿔 처럼 지키고 싶은 것들이에요.

 

그렇기에 저는 이러한 가치들을 사회의 여러가지 모습에서 찾고 그것에 대해 질문하며 결론적으로는 옹호하는 쪽의 책 들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아무리 좋은 책이더라도 완벽한 책은 절대 있을 수 없다, 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쓰는 것도 읽는 것도 불완전하고 조각나고 생채기 많은 인간이기에, 그리고 우리 모두는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통해 객관적인 지식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을 했을 지언정, 개인의 고유가 가지고 있는 프레임과 필터링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불가능하기에 처음부터 '완벽한 책은 있을 수 없다'라는 것이 제 견해에요. 아무리 나이가 많이 든 고전이라도 헛점은 있을 수 밖에 없으며 여러 통계조사를 통한 자료수집을 거쳤더라도 아웃라이어 데이터는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미디엄에서 흥미로운 포스트를 하나 읽었습니다. 

 

https://marker.medium.com/its-finally-time-to-retire-good-to-great-from-the-leadership-canon-91300bff6238

 

It’s Finally Time to Retire ‘Good to Great’ From the Leadership Canon

Two decades after Jim Collins’s business bestseller was published, what lessons does it really hold?

marker.medium.com

 

제 개인적으로는 '좋은 책'이었던 짐 콜린스(Jim Collins)의 'Good to Great'에 대한 신랄한 평가가 있는 북리뷰였습니다.

 

이 글을 쓴 마가렛 헤퍼난(Margaret Heffernan)은 유명한 기업가, 사업가이며 강연자라고 해요. 하지만 그녀의 이 북리뷰에 나타난 대부분의 주장에 저는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좋다고 생각했던 책이 그렇지 않다고 평가받아서, 라는 단순한 이유가 아니라, 이 책을 저평가하는 그녀의 글 저변에 '이 책은 완벽한 책이 아니다. 그러므로 비즈니스 명서에서 이름을 내려야 한다'라는, 비현실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모습이 관찰되었기 때문입니다.

 

두가지만 예를 들어보이겠습니다:

 

 


 

Collins’ definition of greatness is bewilderingly arbitrary: Fortune 500 companies between 1964 and 1999 that achieved returns 6.9 times the stock market over 15 years. Out of 1,435 companies, just 11 meet these criteria. These exemplars might more accurately be called anomalies. Why consider only publicly traded companies and ignore private, family-, or employee-owned businesses? 

 

콜린스는 포츈500의 기업들 중에서 장시간동안 좋은 성과를 낸 기업들과 그렇지 못한 기업들을 인위적으로 구분하고 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점들을 정리했습니다. 이것에 대해 헤퍼난은 그의 조사에 상장기업이나 가족기업 등을 포함하지 않았기에 그의 조사는 독단적 (arbitrary)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셀 수 없이 매 시, 매 초 마다 쏟아지는 데이터의 홍수속에서 결국 우리는 특정 데이터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데 (그리고 '무엇을 선택함'은 '무엇을 선택하지 않음'과 동의어이기에) 콜린스가 책의 초반부에 왜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데이터를 선별하고 조사했는지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붙여놨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그가 더 많은 데이터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납득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0년 이상의 시간동안 포츈500에 든 1,500여개의 기업들을 분류한 콜린스의 데이터를 '협소하다'라고 말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만약에 콜린스가 1,500여개의 기업이 아닌, 5만개를 했더라도 누군가는 또 이러한 비판을 내놓을 수 있겠죠. "5만개가 전부야? 더 했어야지!" 이건 결국 끝나지 않는 논쟁일 뿐입니다. 

 

 


 

 

For those of us running companies, what was weird and disappointing was the absence of living detail. When I ran software startups, exhortations to be modest and never boastful were impractical in a world demanding ambition and vision and in which anything less from a woman would have been deemed an instant fail. I would have loved to settle for “nothing less than an enduring great company,” but that was not what my investors had in mind. Good to Great was a very manly book, whose male leaders embody an upright, Midwestern virtue whose strength and confidence overcame all doubt.

 

 

콜린스는 좋은 리더의 역량에서 겸손함을 가장 중요시되는 것들 중 하나로 꼽습니다. 이것을 헤퍼난은 비난하며 갑자기 본인의 경험담을 가지고 옵니다. 자신이 여성으로써 창업을 할 때, '겸손하고 으스대지 않는 행동'은 남성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기업 사회에서 성공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면서 말이지요. 그러면서 이 책은 매우 '남성적인 책'이라고 말합니다.

 

콜린스의 이 책은 수많은 데이터들을 통해 나타난 공통점이며 한 개인의 경험이 그와 달랐다고 그 공통점들을 다 무시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헤퍼난은 이러한 심각한 오류를 저지릅니다. 게다가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가져오며 이 책이 남성적인 책이다 (=그러므로 좋은 책이 아니다)라는 역성차별적인 듯한 멘트도 남깁니다. 

 

이 책이 쓰인 데이터의 기초가 되는 1960년대-1990년대에는 여성들의 사회적 활동이 오늘날처럼 활발하지 못할 때입니다. 여러 사회활동 및 사회적, 공동체적, 그리고 개개인의 노력 등을 통해 지금은 많은 여성들이 과거 그 어느때보다 리더의 자리에 오르고 있으나 여성의 사회진출의 짧은 역사로 인해 남성-여성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이 책은 '남성적인 책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어불성설인 듯 들립니다. 이것을 두고 성차별하는 책이다,라고 말하는 건 논리에 맞지 않지요. 만약에 이러한 논리라면 공산주의에 가까운 생활을 영위했던 원시시대 역사에 관련된 책을 두고 '이건 공산주의 사상을 부추기는 책이야'라고 말 할 수 있는 것과 같을테니까요. 

 

 


 

 

많은 사람들에게서 높은 평가를 받는 책을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여 그 전엔 몰랐던 부분들을 캐치하여 건설적인 비판을 제시하는 글들은 적극 환영합니다. 일부러 찾아 읽어봅니다. 그렇기에 이 글도 읽었던 것이구요. 

 

그러나 이 북리뷰는 미디엄에서 2천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탄탄한 커리어를 가진 분이 쓴 북리뷰치고는 저변에 진하게 깔려있는 편협한 시선이 참 불편해서 개인적으로는 건질 것이 딱히 없는 북리뷰였습니다. 

 

최근에 신간을 냈다고 홍보글을 올라와 있던데 혹시 헤퍼난은 그것을 위해 이러한 북리뷰를 썼던 것일까요?

 

그렇다고 헤퍼난 그녀의 모든 글과 모든 주장이 틀렸다고 한다면 저 또한 편협한 사고의 함정에 빠지고 마는 것이겠지요. 그녀의 이름을 처음 접하게 된 이 북리뷰를 통해 사실 첫인상은 그닥 좋지 않았으나 그녀의 TED Talk는 제법 괜찮았다고 하니 한 번 찾아 들어봐야겠습니다. 기업에 여성들이 훨씬 적었던 시대에 성공한 기업가로 커리어를 이루신 분이니 배울 것이 분명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글이 길었습니다.

 

결국에 '좋은 책'이란 내가 '주도'가 되어 찾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책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보물을 찾는 것, 아닌 것은 버리는 것.

 

그 책이 '왜 완벽하지 않은지'에 대해 불평할 것이 아니라 분별력을 가지고 습득하며 행동하는 것이 결국엔 가장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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