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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From Abby

나의 독서 사춘기

by Abigail 2021. 3. 24.

전세계적인 코로나의 장기화로 인한 여러 경제활동 및 사회활동이 심하게 둔화되면서 답답한 마음에 작년 말, 어느정도 부분적으로는 즉흥적으로 열게 된 이 곳, 티스토리 블로그 였습니다. 어차피 책 읽기는 오래된 취미중의 하나이니 그것에 대한 내용을 나누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나도 다른 사람들의 새로운 인사이트를 볼 수 있으니 윈-윈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매일은 아닐지언정 그래도 매주 몇 번은 이곳에 꼬박꼬박 들려서 새 글을 포스팅하는데 들인 시간이 적었다고 말 할 수는 없지만 그만큼 얻은 것도 굉장히 많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한동안 재미를 붙여서 하던 블로그 활동이 이번 달 부터 이상하게 힘이 자꾸 빠지고 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블로그 활동, 그 자체에서 오는 피로도라기 보다는 독서생활에 대한 요상한 반항심 내지 사춘기같은 시간을 겪고 있는 것 같아요. 책은 꾸준히 읽고 있어요. 오랜 습관대로 빨간 펜으로 인상깊은 구절은 열심히 줄도 쳐가고 태깅도 해가면서 말이죠.

 

다만 "내가 독서를 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묵직할 질문이 제 생각과 마음을 크게 흔들고 갔기 때문이에요.

 

최근에 우연히 새롭게 알게 된 분이 있었어요. 저와 다른 성향을 가지신 그 분은, 다른 성향답게 책의 성향도 달랐어요. 

인쇄비가 아깝게 느껴질 정도로 '책'이라고 부르기도 싫은 것들도 있긴 하지만, 그 분의 책 성향은 그런것든 절대 아니었고 제가 서점에 들어가면 아마 1순위로 갈 섹션이 아닌 곳에 먼저 가시는, 뭐 그 정도의 건강하고 좋은 다름이었어요.

 

그 분과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상하게 마음속에 싹트는 불편함을 쉽게 외면할 수 없었어요.

처음에는 '다름'에서 오는 불편함인 줄 알고, 그것은 사실 건강한 것이니 더 가까이 해야겠다, 라고 생각했지만 그 마음은 아무리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스스로를 설득하려 해보아도 더더욱 커져만 갔던 것 같아요.

 

안개속을 걷는 듯한 답답한 상황이 며칠 계속 되다가 우연한 순간에 알게 되었어요. 그 분이 오랜 독서생활로 가지고 계신 지식의 양은 컸지만, 그 분이 그러한 독서생활을 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지적 허영심'이었다는 것을요.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지식들을 나열하면서, 굉장히 점잖은 척 하지만 상대방을 무시하고 내가 너보다 더 특출나다, 난 특별하다, 라는 메시지가 아래에 깊이 깔려있었다는 것을 인식한 순간 퍼즐들이 조금씩 맞춰지게 되었어요.

 

그 분의 인생이야 그 분의 것이니 제가 어느 한 단편만을 보고 왈가불가 할 자리는 되지 못하지만

(게다가 새롭게 알게 된 분이므로 더더욱!)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제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되더라구요.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가진 지식을 누구에게 자랑하고 싶고 거기에서 얻는 우월감 때문인가.

 

내가 선별하는 책들은 한쪽으로 과하게 치우쳐 있지는 않은가.

 

외적동기인가 내적동기인가.

 

 

 

처음에는 모르는 것 보다 아는 것이 나을테니 지적 허영심이라고 하더라도 무지한 것보다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어요. '지식의 저주(Curse of Knowledge)' 떠올랐거든요. 내가 어느 지식을 습득한다는 것은 내게 특정한 프레임이 생긴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이 전의 상태처럼은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듣보다 실이 많은 '지식의 저주'는 차라리 없느니 못한 것이 될테니까요.

 

모든 사람은 원래부터 '조각'으로 태어났으니 아무리 노력한 들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가 가진 특유의 '조각'을 갈고 다듬어 가장 멋진 모습으로 거듭나고 또 거듭나고 싶은데, 

내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내가 잘 가고 있기는 한지, 

큰 그림을 잃어버리고 눈 가리고 귀 막고 무조건 '고!'하는 독서는 굉장히 맹목적이고 편협하며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슴이 덜컹했어요. 

 

지독한 다독가가 되고 싶지만 목적을 잃고 그저 책의 숫자만 올리려는 행동은 바보같고 어리석으며 얼마나 위험한 지를 깨닫고 나니 제 독서생활에 '일시정지' 버튼이 눌려진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런 기분이었던 것 같아요.

 

 

 


 

2021년 3월 23일 (캐나다 동부 시간 기준), 

제가 노트에 적은 저의 '독서/배움'의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내가 하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함. 내 분야의 일을 더 날카롭게 잘 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들을 채운다.

 

2. 잘 듣고 잘 말하고 잘 쓰고 싶으므로. 이 세가지 스킬은 평생가도록 매우 중요한 스킬이라고 생각함. 독서를 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일과 비슷함. 그리고 좋은 글을 읽음을 통해 잘 말하고 잘 쓰는 법 또한 익힐 수 있음.

 

3. 내 주변에서 당장 쉽게 찾아볼 수 없어 답답한 '위인들'을 책에선 만나볼 수 있다. 실생활에선 그 들이 나를 만나주고 그들의 지식을 기꺼이 전해줄 기회란 실질적으로 매우 적은데, 책을 통해서 만난다. 롤모델로 삼는다. 

 

4. 세상을 본다. 점을 연결한다. 과거에서 배우고 현재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미래를 꼼꼼하게 대비한다.

 

 

쓰고 보니 되게 당연한 이야기들이긴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문자화 해서 펜으로 꾹꾹 적어보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흔들리는 마음이 조금은 안정화된 느낌입니다.

 

숲을 사랑하지만

그 곳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제 스스로에게 자주 꾸준히 끈덕지게 물어보고 또 물어봐야 할 것 같아요.

 


 

현재 읽고 있는 책은 유발 하라리(Yuval Harari)사피엔스(Sapiens)입니다. 

스토리텔링이 좋습니다. 그러면서 strongly-opinionated된 책이라는 인상을 받습니다. 

 

열심히 읽고 리뷰들고 올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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