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긴 여운을 주는 소설.
짧지만 문학계에 큰 파동을 일으키는 소설.
짧지만 두고두고 회자되며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소설.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 '변신 (Metamorphosis)'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요.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는 길이이기에 소설의 마지막까지 마침표를 찍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중간에 몇번이고 돌아가서 특정부분을 반복해서 천천히 음미하듯 읽고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고 멍하니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그래서 같은 양의 다른 글들에 비해 결론적으로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린 소설이 되어버렸어요.
'내가 배가 고픈데 어떤 음식을 먹을까?'라는 질문에 각자가 선택하는 기준은 다릅니다.
누구는 영양소, 누구는 편의성, 누구는 맛, 누구는 칼로리를 먼저 생각하겠죠.
이렇게 각자 다양한 니즈에 맞추어 맞춤 제품이 생산되는 것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흔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를 들어 다이어트를 위한 식품을 먹으면서 양이 충분하지 않다, 충분히 달고 기름지지 않다, 초이스가 다양하지 않다, 라고 불평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첫단추부터 잘 못 맞춘 방향성이 틀린 비판일 것입니다.
저는 책을 읽는 것도 이처럼 음식을 고르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느 책은 토의를, 어느 책은 재미를, 어느 책은 즉각적인 행동을, 어느 책은 더 깊은 연구와 고민을 위해 쓰여집니다. (많은 경우, 하나의 아이템이 여러가지의 목적을 달성하려 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 합니다. 음식에서 처럼요. 여기에서 구분은 the utmost priority에 따라 비유로 설명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미'가 주목적으로 쓰여진 책을 사고의 확장을 위해서 읽을 순 없는 것이고 반대의 케이스도 어려울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음식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하루의 한 번 이상 꼭 먹어야 하는 것의 지극히 일상적인 것이지만 책은 통계상 꾸준하게 읽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는 사람들보다 현저하게 확실히 적다는 특수성이 있다는 점에서, '독서'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마치 독서를 한다는 것, 그 자체에 때로는 필요 이상으로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사회가 '독서'를 너무 고상하고 특별한 것처럼 포장하는 것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책을 읽는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난 책을 읽어, 그러니 어떤 책에 대한 나의 의견은 타당해'라는 자만심이 한 겹 덮여진 자신의 주장을 다른 사람들에게 피력하고 강요하는 모습을 보기도 해요. 그 사람이 가진 어떤 책에 대한 의견과 시선이 얼마나 타당한 지에 대한 평가는 앞서 이야기했던 음식에서의 비유처럼 '목적'과 '장르'가 제대로 일치되는가, 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말이지요.
예를 들어, 스스로를 즐겁게 하기 위해 그런 목적으로 쓰여진 가령 판타지 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이 비지니스나 역사책을 읽었을 때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하기란, 평소 그 분야의 책을 꾸준히 읽어온 사람보다는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책'이라는 가장 커다란 공통점 하나만을 가지고 자신의 서투른 의견을 너무나도 자신있게 진리인 것 마냥 펼치는 사람들을 보면...조금 오그라들 때가 있어요 😅 사실 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단지 그 사람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완전히 다른 장르와 목적을 가진 책이더라도) 특정 도서에 대한 그 사람의 평가를 굉장히 신빙성 있는 기준으로 여기는 수많은 사람들이지요.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고 하니, 이 소설은 사람이 벌레로 변하는 허구적인 장치가 들어가있지만 재미가 주목적으로 쓰여진 판타지 소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궁금해서 찾아본 리뷰 사이트에 어느 분이 '이 책은 너무 재미없다, 형편없다'라는 평을 남기신 걸 보았어요. 대댓글로 다른 분들이 '이 책은 재미를 위한 책이 아니다'라고 설명했지만 그 분은 '나 책 많이 읽는 사람이다! 감히 나한테 평가질이냐?'라면서 공격적이고 날 선 말투로 더욱 거센 비판글을 게시했구요. 그 분의 프로필을 보니 자신은 재미를 위해서 주로 판타지 소설을 읽는 사람이라고 가장 첫번째로 쓰여져있었기 때문에 왜 그 분의 지적이 왜 처음부터 잘못된 성질의 것이었는지, 그리고 왜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지적했는지 쉽게 추측할 수 잇는 부분이었어요. (그분이 판타지 소설을 평가하셨다면 맞는 평가 기준이 되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분의 프로필을 보면 판타지 소설만 몇백권을 읽으신 분이었어요).
문제는 그 분이 적지 않은 구독자를 가진 북튜버였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 분의 의견을 필터없이 '사실'로써 받아들이는 듯 보였어요.
왜 이런 글을 길게 쓰느냐고 물으신다면...
제 작은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이, 그리고 저 역시도 위와 같은 '핀트가 엇나간' 평가를 하지 않기를, 그리고 그런 평가가 있더라도 쉽게 현혹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에요.
만약에 미래에 제가 핀트가 잘못된 시선으로 책을 이해하고 해석하려 한다면 제게 이 포스트의 내용을 상기시켜 주세요. 따끔한 브레이크 장치가 될 것 같습니다.
이 작은 블로그를 연 지 겨우 몇 달 밖에 되지 않았다지만, 그리고 책 좀 읽었다,라고 어디가서 말하기에는 감히 넘 볼 수도 없는 고수님들이 많이 계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하나 확실하게 배우고 깨달은 것은 독서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매우 부지런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에요. 책을 좋아하시는 이웃님께서는 어느 책을 읽기 전 그리고 읽은 후, 작가에 대한 리서치, 그러한 책이 쓰여지게 된 연유, 역사적 배경, 작가의 인터뷰 등등을 찾아본다고 하셨어요. 현실적으로 이러한 부가적인 것들을 읽는 모든 책들마다 하는 것은 어려울 테고, 책에 따라서 꼭 그래야만 하는 필요성도 없을 수 있겠지만, 시대적 배경이 오래된 문학책이라면 이러한 부수적인 리서치들이 필요하겠구나, 라는 것을 더 많이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Metamorphosis
Author: Franz Kafka
Originally published: 1915
Original Language: German
Original title: Die Verwandlung
단 하루만에 벌레가 되어버린 그는 과연 누구인가
한국어 번역본의 이 책의 제목은 '변신'이라고 합니다. 사실 Metamorphosis에 좀 더 가까운 한국어 단어는 변신보다는 변형, 변태(變態)가 아닐까 싶어요. 본래의 형태에서 완전히 다른 형태로 변하는 것을 뜻합니다.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나비로 거듭나는 것 처럼 말입니다.
주인공 그레고르(Gregor Samsa)는 하룻밤만에 커다란 벌레가 되어 버립니다. 정확히 어떠한 종류의 벌레였는가, 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제가 읽은 영어판 번역본에서는 바퀴벌레라고 나와있었는데요, 소설 '롤리타'를 쓴 러시아 출신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는 날개가 달린 무당벌레라고 해석했습니다. 소설에서 이 벌레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묘사가 나오긴 하지만, 원어로 봐도 '벌레'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는 포괄적인 단어가 쓰였을 뿐, 정확히 어떠한 종류인지는 알 수 없다고 해요.
(벌레 사진을 이 포스트에 넣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아 책의 제목에 맞게 나비 사진을 넣었습니다! ㅎㅎ)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던 아들 그레고르가 하루 아침에 벌레로 변하면서 가족의 다이나믹은 완전히 180도 변하게 됩니다. 그의 성격이나 사고능력은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몸의 형태에 따라 신체적 능력 역시 벌레의 그것으로 변모해버려요. 사람의 목소리를 낼 수 없고 (=정상적인 인간의 대화가 불가능하고) 입맛 역시 벌레의 것으로 따라갑니다.
이런 어처구니 없고 억울하고 황당하다 못해 분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닥치면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전후 상황을 곰곰히 떠올려보고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는게 일반적인 반응일 것 같은데, 그레고르는 물론이고 그의 가족들이 보인 반응은 이러한 예상과는 많이 달라요. 특히 그레고르는 커다란 감정의 동요 없이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출근을 하려는 끈질긴 노력을 보여요. 지금 이렇게 하늘이 무너진 것만 같은 상황에서 출근을 하는 것은 전혀 중요한 일이 될 수 없을텐데 본인의 의지대로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몸을 기어코 끌고 밖으로 나가려는 그의 움직임에 대한 묘사가 제법 상세하고 길게 서술됩니다.
하루 아침에 갑자기 변한 그레고르의 모습이 매우 충격적인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 바이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도록 그와 공감을 한다던가 그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법 한데, 그레고르의 가족은 이 두가지가 모두 완벽하게 결여된 모습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유지합니다. 그들이 유일하게 하는 고민은 '어떻게 하면 그레고르를 숨길 수 있을까'와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이 두가지 뿐이에요. 그레고르의 자존심과 꿈, 그 모든 것을 버려가면서 돕고자 했던 그의 가족들에게 그레고르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당신의 그 사람은 안녕하신지요
철저하게 개인적인 해석으로, 이 책에서 보여지는 '인간성', '인간이라는 아이덴티티'의 개념은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아요.
첫번째는 외형적인 모습의 인간성입니다. 그레고르가 정체불명의 이유로 하룻밤사이에 사람에서 벌레로 탈바꿈하면서 인간의 모습을 가짐으로써 오는 인간의 아이덴티티는 즉각 소멸됩니다.
두번째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오는 인간성입니다. 모든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입니다. 우리는 크고 작은 커뮤니티에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간성을 서서히 말려 사라지게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집니다. 매일, 매우 최소의 접점만으로 그레고르에게 생명유지를 위한 음식을 제공해주는 그의 여동생이 아닌 다른 가족들은 그와 교류하려는 큰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 그레고르는 더이상 사람이 아니고 벌레이니 벌레가 돌아다니기 편하게 그의 방에 있는 모든 인간의 가구를 치워버리기로 결정을 내린 가족들을 보면서 그와 세상사이에 연결된 끈들이 하나 둘 씩 힘없이 툭툭 끊어져내리는 것을 목격한 것 같았어요.
마지막, 세번째는 사람으로 태어난 순간부터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절대로 변하지 않는 존재론적인 인간성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피하고 싫어하는 벌레의 모습을 가졌지만 그는 끝까지 벌레가 아닌 '그레고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소설 후반으로 갈수록 그레고르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그것(it)'이라는 대명사가 점점 더 자주 쓰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데요, 점점 흐려져가는 그의 이름이지만 작가는 마지막에도 끝까지 분명하게 그의 이름을 박아 넣지요. '그것'은 그레고르라고 말이에요.
우리가 사람답게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단지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그 하나의 조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다른 생물들과 사람이 근본적으로 구별된다는 명제 아래 (정말 그렇느냐 아니냐,는 개개인의 철학에 따라서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이건 논외로 하고) 정말 사람이 '사람으로' 살기 위한 필수 조건들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어요.
프란츠 카프카는 시대를 앞서간 천재 작가라는 평을 받는다고 해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에 미완으로 남긴 작품들도 많았기에 그가 좀 더 오래 세상에 머물렀다면 미완으로도 큰 작품성을 갖는 작품들이 완성이 되었을 것은 물론, 세상을 뒤집는 뛰어난 다른 작품들을 많이 남겼을 것이라고 예상하며 그의 요절을 안타깝게 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 또한 그중의 한 명이구요.
개인의 삶은 참 많이 멍들고 아팠을텐데, 그러한 슬픔의 재 가운데에서 피워낸 그의 작품은 진흙탕에서 기어코 꽃을 피어낸 연꽃과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 물론 고요하고 차분한 연꽃과는 느낌이 달라요. 연꽃보다는 훨씬 작고 연약한 꽃송이의, 까칠하면서도 냉소적이고 유약하면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약간은 우울한 것 같은 느낌까지도 풍기는 그런 꽃.
그의 다른 작품들도 매우 큰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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