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게도 성함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중학교때 국사 선생님이 해주셨던 어느 한 말씀은 지금도 똑똑하게 기억에 납니다.
"역사를 변경하는 가장 쉬운 방법중의 하나는 명칭을 바꾸는 것이다."
민중운동을 폭동으로, 저항을 반항으로, 비판을 폭력으로 바꾸기만 해도 (혹은 반대로 바꿀 수도 있겠지요) 그 역사적 사건의 성질이며 색채가 극명하게 달라지며, 따라 동시대의 국민들, 그리고 후세들이 그 사건을 대하는 자세 역시 드라마틱하게 바뀔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교과서에 실린 역사 이야기는 누군가의 주관이 아닌 순도 100%의 객관적 사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당시의 순진했던 중학생인 제게 굉장히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말이었어요. 그 한마디가 지금까지도 가슴에 콕 박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당연하다'라고 보는 것에 일부로 물음표를 던져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조지 오웰의 대표소설 '1984'를 읽으면서 그 선생님이 참 많이 생각났더랬어요.
예전에 어느 블로그에서, 많은 CEO, 교수,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추천하는 책 들중에 하나가 바로 이 조지 오웰의 1984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책 장 한켠에 고이 모셔놓은지는 제법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다른 책들에 밀려 얼마전에야 마음 먹고 집었어요.
디스토피아 소설인 만큼 쉽게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감히 '재미있다'라고 말하기에는 어려운 책입니다.
1949년에 출간된 소설인데도 21세기가 넘어오고도 20년이 지난 지금의 모습이라고 해도 전혀 이질감이 없을 부분들이 불쑥 불쑥 튀어나오지요. 디스토피아 소설이 꾸준한 인기를 끄는 것은, 혹시 우리의 모습을 찬란하게 거울에 비춰주기 때문이 아닐까요? 문화와 무리속에 들어가있으면 스스로의 얼굴을 파악하기란 매우 어렵지만, 이런 외부 매개체의 소설을 통해 비춰보는 나의 모습, 내 주변의 모습은 생각보다 처절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1984
Author: George Orwell
Originally published: June 8, 1949
Original language: English (British)
사람 아래에 다른 사람을 둔다는 것은
사견으로 저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을 관통하는 공통분모 중 하나는 특정 그룹의 사람들 아래 다른 그룹에 속한 사람들의 위치를 시스템적으로 한정하고 제어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인종차별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거 흑인들이 노예였던 시절, 피부가 하얀 사람들의 그룹이 그들과 다른 피부가 까만 사람들의 그룹을 법이라는 시스템으로 그들 발 아래에 머무를 수 밖에 없도록 한정했지요. 지금은 사라진 악법이지만, 이와 반대로 표면적으로 흑인인권운동을 내세우지만 깊숙히 살펴보면 자신과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들을 비하하고 하등시하려는, 결국은 뿌리는 같은 모습을 일부 발견하기도 해요. 흑인이기 때문에 더 많은 사회적 이익을 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서부터 흑인우월주의에 이르기까지 그런 것이겠지요.
여성인권운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억압받는 여성들을 돕고 소외되었던 그들의 동등한 인권을 찾아주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옳은 일이지만, 이것이 도를 넘어 남성들을 단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모두 범죄자 혹은 여성보다 존재론적으로 미개한 존재로 여기는 것은 굉장히 옳지 않으니까요.
어디 이뿐일까요. 가족내, 회사내, 학교내에서 이뤄지는 위계질서에 의한 비인격적인 폭력. 장애인들 등등. 시야를 넓혀보면 이러한 구분과 차별이 우리안에 내재되어 있는 악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너무나 쉽게 기운 저울들을 발견할 수 있어요.
소설 1984에 나오는 '빅브라더스'로 명칭되는 지도층과 그 지도층의 철저한 세뇌, 감시, 관리를 받는 일반 시민들. 그 사이의 두터운 갭을 보면서 위에서 열거한 것을 포함한 오늘날의 여러가지 사회상을 떠올려 볼 수 밖에 없었는데요, 사람 아래 사람을 둔다는 것이 얼마나 소름끼치도록 악한 일인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민종이 모여 사는 나라에 살고 있는 저는, 때로 저와는 완전히 다른 문화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종종 마주하곤 합니다. 판이하게 다른 표현 방식으로 인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제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의 선택지들 중 하나는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그들의 특징 하나로 그들의 모든 아이덴티티를 정의하고 내가 속한 그룹보다 저질의 존재들로 치부하며 무시하는 것일테지요. 어쩌면 이 선택이 가장 쉬운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윤리적인 옳고 그름으로 평가되는 것들이 아닌 회색지대에 있는 것들, 혹은 '다르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들에게도 그러한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매우 빠르고 손쉬운 일입니다. '그건 옳지 않아'라는 생각으로 그렇게까지 마음이 한방향으로만 흐르지 않게 노력은 하고 있지만 유혹이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앞으로는 그러한 순간순간의 유혹이 올 때 마다 이 책의 내용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마음속에 하나의 작은 브레이크 장치가 생긴 것 같아요.
생각을 멈추고 내 말만 들어봐
빅브라더스가 시민들에게 강제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생각하지 말라'입니다. 그들의 표정에서 조금이라도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낌새라도 보이면 순식간에 그들을 잡아갑니다. 끔찍한 고문을 통해서라도 그들이 빅브라더스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머무를 수 있는데 사력을 다 합니다. 의무적으로 켜놓아야 하는 스크린에서는 쉬지 않고 정신세뇌를 위한 메세지가 울려퍼집니다. 그것을 피하려고 하거나 무시하거나 아예 끄려고 하는 것 역시 중범죄에 속합니다.
상상만 해도 너무나도 끔찍해요.
혹시 그 사진 보신 적 있나요. 비만간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거위의 입을 억지로 벌려 기다란 원통을 꽂아넣고 쉴새없이 음식을 쳐넣던 (표현이 거칩니다만 정말 '쳐'넣는 것이라고 밖엔 표현이 되지 않았어요) 장면을 찍은 사진이요. 그 사진을 보자마자 극악스러운 잔인함에 저도 모르게 '으악!'이라는 소리를 지르며 바로 스크린에서 고개를 돌릴 수 밖에 없었어요.
빅브라더가 시민들을 향해 하는 일도 이와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선별된 메세지로만 이뤄진 유인물, 방송, 행사등을 통해 그들의 자율성과 주도성을 철저히 짓밟습니다.
인간의 뇌는 몸무게에서 2%밖에 차지하지 않지만 열랑의 20%를 사용한다고 해요. 이는 어찌보면 생각하는 건 그만큼 '힘든'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힘든 일은 피하고 싶은 것이 자연스러운 본능이기에 내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누군가가 내게 건네주는 메세지들만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은 어찌 보면 편하고 쉬운 삶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것은 내 존재 자체의 독특하고 하나뿐인 존재의 의미를 지워버리는 것과 같은 행동인 듯 합니다. 내가 스스로 걸을 수 있는데 걷지 않고 누군가가 태워다주는 대로만 가다보면 나의 물리위치적인 자율성이 사라지듯이 내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데 그 힘을 외부적인 힘을 통해 앗아가 버리는 것은 사고 그리고 감정적인 자율성을 완전히 강탈당하는 폭력이니까요.
조지 오웰의 1984가 흥행한 데에는 시대적인 배경, 즉 냉전시대의 공산주의와 민주자본주의가 팽배하게 대립한 것이 한 몫 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어느정도는 동의합니다. 이 소설이 오늘날 21세기에 나왔다면 지금과 같은 흥행과 명망을 얻을 수 있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빅브라더'를 비롯해 이 소설의 등장 인물들이 상징하는 정치적 인물들, 개념들이 분명 있긴 하지요. 조지 오웰은 분명 그러한 것들을 염두에 두고 소설을 썼다고 알려졌으니까요. 실제로 중국의 어떤 도시들에서는 (나라 전체가 그런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공교육, 공공도서관에서는 이 책이 금서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인 상징성을 배제하더라도 사람안에 존재하는 악,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회적 모순, 진정한 자유의 의미 등과 같은 것들은 우리에게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커다란 물음표를 던집니다.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그저 개인적으로 좋은 문학을 만드는 요소들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건강한 비판과 보편성, 그리고 여러가지 각도로 살펴볼 수 있는 다층, 다면성 등이 아닐까, 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하는데 그러한 면에서 이 책은 상당히 좋은 책이라고 느껴집니다.
검붉은 빛이 맴도는 회색빛깔이 진하게 드리워진 책입니다만, 최소 한번쯤은 시선을 돌리지 말고 정면으로 제대로 봐야할 광경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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