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말로 역유토피아.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행복한 상태의 가상세계 유토피아와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부정적인 모습의 미래 세계를 그묘사함을 통해 오늘날 현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문학작품을 뜻하는 '디스토피아 소설 (Dystopian Fiction)'은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가상의 이야기이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 정말 있을 법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익숙함에 가려 보지 못했던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을 까칠하고 깐깐한 시선으로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죠.
2021.03.27 - 무섭도록 매력적인 장르, 디스토피아(Dystopia)
디스토피아 소설을 이야기 할 때 자주 거론되는 작품들 중 하나가 Fahrenheit 451 일 것입니다. 이 길지 않은 소설을 통해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는 유명세를 탔으며 레트로 휴고상 등 수많은 상을 받게 됩니다.
저는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는데요, 영어 수업 시간에 포함되었던 책들의 목록들 중 하나가 이 책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가 속해있던 영어수업시간은 다른 책을 채택해서 이 책을 읽지 않았지만 다른 수업을 듣던 친구는 이 책을 필수도서로 읽었어야 했어요. 도서관에서 골똘히 이 책에 고개를 파묻고 있던 친구에게 "어때? 재밌어?"라고 묻는 제 말에 웃는것도 우는것도 아닌 묘한 표정으로 "응, 재미있긴 해. 근데 좀 많이 무서워"라는 대답을 하던 친구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고등학교 영어시간에 쓰일만큼 어렵지 않게 쓰여졌지만 이 책이 던지는 묵직한 고뇌와 사유는 참으로 깊기 때문에, 성인이 읽으면 또다른 생각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어 번역본: 화씨 451
카테고리: 소설, 문학, 공상과학, 과학소설, 고전, 디스토피아
Amazon.com 별점: (포스트 작성일 기준) 4./5, 리뷰 19,320개
Goodreads 별점: (포스트 작성일 기준) 3.99/5, 리뷰 1,779,096개
아는 것, 생각하는 것, 배우는 것.
이러한 것들이 금지된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소방수지만 불을 끄는 것이 아닌 일부러 방화를 하는 직업을 가진 이 소설의 주인공 몬태그(Guy Montag)의 삶은 단순하며 평화로웠습니다. 책은 읽어서도 소유해서도 안된다는 정부의 법에 따라, 책을 소유하다가 발각된 사람들의 책을 압수하고 태우는 (때로는 집도 같이) 일을 합니다. 맹렬한 화염에서 힘없는 한 마리의 새 처럼 푸드덕거리며 까맣게 타들어가는 책들을 보는 것은 몬태그의 일상이면서 그를 즐겁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몬태그의 마음이 이 책을 여는 맨 첫장, 첫번째 문장에서 나타납니다.
It was a pleasure to burn.
모든 것이 괜찮다고 생각될 때 문제는 꼭 일어나기 마련이지요. 몬태그에게도 그랬습니다.
새로 이사온 옆집에 사는 이웃, 클라리스 매클렐렌(Clarisse McClellan)이 그의 반복되는 일상을 흔들어 놓습니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난 늦은 밤, 몬태그의 퇴근길에 마주친 클라리스는 몬태그에게 쌩뚱맞은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행복하세요? Are you happy?"
많은 사람들이 책과 집을 태우는 일을 하는 소방수들을 무서워하지만 본인은 무서워하지 않는다며, 소방수들도 결국엔 사람이지 않느냐며, 호기심 어린 17살의 소녀의 눈빛으로 몬태그에게 말을 걸어온 소녀는 몬태그 당신은 그래서 행복하냐는 질문을 던지며 어둠속으로 춤을 추듯 사라집니다.
이런 황당무계한 질문을 받는 그 순간부터 몬태그의 마음속에는 그동안은 하지 않았던 의문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내 눈에 보이는 세상, 그래서 그것이 정답이라고 의심치 않고 믿어왔던 가치들, 그것의 진위에 대해 고민해보기 시작한 것이지요. 서른살의 몬태그가 그동안 살면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회오리처럼 그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일어난 사건들은 더욱더 그를 강한 회오리바람으로 던져 놓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각 인물들은 작가가 정확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심어놓은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각자 캐릭터가 보여주는 모습과 가치관이 뚜렷하거든요.
한 예로 몬태그의 아내 밀드레드(Mildred)는 아무런 의심없이 사회가 시키는대로 주어지는 가치들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캐릭터입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 왜 그래야만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며 비판하는 능력은 그녀에게 결여되어 있습니다. 남들이 하라는 대로 하고 아니라면 아니고 그렇다고 그런 줄 아는, 자기의 주도성이 사라진 매우 얕은 사고방식을 가진 인물입니다. 텔레비전에 중독되어 있으며 텔레비전에 나오는 인물들을 자신의 '가족'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밀드레드이기에 이야기가 진화될 수록 몬태그와의 갈등은 점점 심화됩니다. 몬태그가 진리를 향해 질문하고 도전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성장형' 인물이라면 밀드레드는 마치 웅덩이의 고인 물 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변화를 거부하는 모습을 고집하기 때문이지요. 지식과 배움에 있어서 반지성주의적인 편에 선 극단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몬태그의 상사인 비티(Beatty)의 캐릭터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이 책에서 '옳은 편'에 선 두 인물, 파버(Faber)와 그레인저(Granger)는 노인으로 설정된 만큼, '지식'과 '지혜'를 상징하지만 비티는 쉬이 변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사회에서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기에 더욱더 이상과 현실사이에 괴롭게 몸부림치는 젊은 시민을 나타내고 있다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그랬던 것일까요, 약간은 삐딱하고 거만한 태도로, 모든것을 다 안다는 냥 껄렁대는 것 같은 비티가 얄미우면서도 가장 마음에 끌렸거든요. 아마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도중에 이런 사회가 정말 당도한다면, 나도 비티같은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불쑥 불쑥 찾아왔던게 아닐까 싶어요.
책이 왜 금지가 되었냐는 몬태그의 물음에 비티는 많은 사람들이 어느 순간 오랜 시간동안 책을 읽고 생각하는 것을 피하고 힘겨워했고, 따로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간단하고 얕은 종류의 지식들만 찾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찾아온 영향도 있다고 설명하는 부분이 있어요. 이 부분이 얼마나 신랄하면서도 끔찍하던지요.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과 텔레비전, 스마트폰과는 중독에 걸린 것과 같은 모습을 보이면서 꼭꼭 씹어먹어야 하는 독서는 반드시 해야하는 이유가 아니면 하지 않는 오늘날의 모습과 매우 비슷했기 때문이에요.
누군가가 잘게 쪼개어서 으깨어서 부드럽게 만든 뒤 입에 떠먹여줘야 그제서야 먹는 것 같은 지식이 넘치는 현대사회의 모습에 우리는 딱딱한 음식을 내 손으로 떠서 먹는, 스스로 사고해보고 고민해보는 능력이 결여된 것과 같은 현상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일까요, 아니면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는 것일까요.
안타깝지만 후자의 경우가 더 흔한 것 같아요.
"Classics cut to fit fifteen-minute radio shows, then cut again to fill a two-minute book column, winding up at last as a ten- or twelve-line dictionary resume. I exaggerate, of course. The dictionaries were for reference. But many were those who sole knowledge of Hamlet ... Hamlet was a one-page digest in a book that I claimed ... Do you see? Out of the nursery into the college and back to the nursery; there's your intellectual pattern for the past five centuries or more."
책 한 권을 온전히 다 읽은 후에 올리는 이 포스팅과 같은 북리뷰 이전에 책을 읽는 와중에 짧게 올려보는 포스팅은 어떨까, 시작해 본 '슬로우 리딩' 게시판에 첫 책이 이 책이기도 했습니다. 같은 부분을 여러번 읽어보기도 하고 멈춰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넉넉하게 갖기 위해 일부러 3일이라는 시간을 두며 이 책을 완독했지만, 사실 가독성이 좋고 짧은 책이기에 하루에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양이긴 합니다.
2021.03.30 - [영어원서/느리게읽기] 레드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 / Fahrenheit 451 by Ray Bradbury: (소개, 1/3) "당신은 행복한가요?"
2021.03.31 - [영어원서/느리게읽기] 레드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 / Fahrenheit 451 by Ray Bradbury: (2/3) "책에는 숨쉬는 구멍이 있어"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디스토피아 소설하면 거론되는 명작들 중 하나인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1984' 역시, 옛날에 읽긴 했지만 다시 천천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래도 머지 않은 시간에 읽어야 할까 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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