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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책 서재: Non-fiction

[영어책리뷰, 서평] 노벨평화상 수상, 엘리 비즐의 나이트 Night: 우리에게 너무 가까이 있는 '악'의 존재

by Abigail 2021. 5. 19.

 

몇번을 읽어도 처음의 감정이 무뎌지지 않는 책이 있습니다.

 

오히려 읽으면 읽을 수록 마치 한 폭의 유화처럼 그 간의 시간동안 쌓인 감정과 생각이 겹겹이 더해져 보다 진한 자욱과 잔향을 남기기도 하지요.

 

처음 읽었을 때에는 세상이 뒤집히는 것 같은 충격에 그저 '멍'했던 것 같고

두번째 읽었을 때에는 "대체 어떻게?"라는 물음표가 머리속을 가득 채웠고

이번, 세번째 읽었을 때에는 여러개의 조각으로 부서지고 흐드러지는 것과 같은 마음들 위로 우리와 얼굴을 마주한 '악'의 실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1백여 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 비교적 얇은 두께의 책이기에 천천히 읽는다고 해도 하루안에 완독하기에는 어려운 양은 아닙니다만, 앞장을 넘기기 전의 마음과 책의 가장 마지막장을 넘기고 난 뒤의 제 마음의 온도를 비교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극명하게 다르게 만들어버리는 그런 책입니다.

 

198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엘리비즐 나이트_1

 

Night

Author: Elie Wiesel

Originally published: 1956

Original language: Yiddish (이디시어: 중앙 및 동부 유럽에서 쓰이던 유대인 언어)

 

 


 

 

태어나면서 30대에 접어든 지금까지, 총 3개의 나라에서 살았던 저이지만 스스로 느끼기에 제가 너무 한정된 틀 안에 갇혀있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지역적인 특성때문에 다른 국가, 다른 문화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기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결국에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뭉치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고 본능이기에 이 틀을 의도적으로 깨지 아니하면 세계 어디에서 살던 '고인물'이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독서에 관해서도 그런 생각을 합니다. 잔잔한 것 같은 내 작은 연못의 둑을 헐고 풍랑이 칠 지언정 커다란 곳으로 나를 억지로라도 이끌어 줄 수 있는 책을 신경써서 골라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세계2차대전 기간 동안의 나치의 유대인 학살. 아우슈비츠.

 

 

적은 숫자도 아니고 어엿한 한 대형 도시 혹은 한 국가의 전체 인구수에 해당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을 마치 쓰레기 치우듯이 해치운 사건. 이만큼의 엄청난 숫자의 공공연한 학살이면 다른 사람들이 도와주겠지, 라는 기대는 당연한 것일 수 밖에 없겠지만 역사는 때로 잔인하게 이러한 기대를 짓밟아버리곤 합니다.

 

15살짜리 어린 소년이 하루 아침에 포로가 되어 사랑하는 어머니와 여동생과 헤어지고 (다시 만나지 못했어요)

아버지와 소년은 서로에게 있어서 죽음보다 못한 이 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만 하는 유일한 이유가 됩니다. 

소년의 이빨에 덧씌운 금크라운까지 탈탈 뽑아내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안에서 흐르는 공기처럼 가해지는 학대와 고문은 절대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니지요. 누군가가 힘없이 얻어터지고 사형당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목도하는 것은 고개를 올려다보면 하늘이 보이는 것 처럼 너무 당연하고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되어버렸어요.

 

습관적으로 외우고있는 유대인들의 기도문을 되내이면서 피와 고름으로 흠뻑 젖은 목소리로 '신은 없어요!'라고 외치는 이 소년에게 과연 그 누가 신성모독이라고 욕 할 수 있을까요.

 

매우 절제된 어조로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영사기의 필름처럼 기록된 작가 본인의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은 우리를 참 불편하게 합니다. '불편하다' 라는 표현으로는 절대로 다 담아질 수 없는 감정입니다. 매우 불쾌하고 분노하면서도 끝도 없이 애달프고 서러워요. 이 작고 빼빼마른 소년의 얼굴 앞에 드리워진 악의 그림자가 입김을 뿜을때마다 숨이 턱턱 막힙니다.

 

 

 


 

 

 

엘리비즐 나이트_2
Auschwitz concentration camp, Auschwitz, Poland

 

엘리비즐 나이트_3
Auschwitz, Poland

 

 

역사는 우리에게 친절하지 않습니다.

 

보기 싫고 듣기 싫은 것들이라고 비켜주지도 않습니다. 

 

세계 강국들이 다수 참여한 대대적인 전쟁이었고 세계의 외교적 위치에서 오랜 시간동안 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유럽의 역사이기에 아돌프 히틀러가 인류 역사에 존재했던 매우 독특한 케이스의 '아웃라이어' 살인자로 많이 여겨지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이는 절대 사실이 아니지요. 

 

나이지리아의 아쿠부 고원, 에티오피아의 맹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캄보디아의 폴 포트, 터키의 엔베르 파샤, 일본의 도조 히데키,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그리고 북한의 김일성과 중국의 마오쩌둥까지. 

 

특히 마오쩌둥은 약 8천만명을 죽였다고 하니, 남한과 북한의 전 인구가 한꺼번에 날아간 것과 비슷한 수치에요. 

 

'백만명'은 우스운 이런 대형 사건들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의 생명을 망설임없이 기쁨으로 짓밟는 일은 우리 주변에도 안개처럼 가득히 깔려있어요. 가정폭력, 성매매, 인신매매. 모습은 조금씩 달리할 지라도 그 뿌리는 사람이 사람을 짓이기고 쓰러뜨리는 ''입니다. 

 

그래서 이런 책을 읽으면 무섭고 불안하기까지 해요. 이런 '악'이 우리 모두 안에 내재되어 있다면 당연히 내 안에도 있을 것이고, 상황과 환경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다면 나도 누군가를 저렇게 행복해하면서 짓이길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까지 닿게 되니 말이에요.

 

나도 모르는 내 안에 일그러지고 망가진 마음을 경계하면서 이것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면 끝까지 싸우고 반항하고 거절하고 보이지 않는 밑바닥 가장 아래로 밀어넣겠다고, 그렇기 위해서는 비오는 날이 아닌 지금처럼 맑은 날, 지붕을 고치고 단단히 채비를 해야한다고.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같이 읽고 싶은 책이 있었어요. 저널리스트 출신 작가 Wendy Holden가 쓴 Born Survivors라는 책인데 임신한 채로 유대인 수용소에 끌려간 세 명의 여성이 혹독한 상황 가운데서도 자신과 아이를 지킨 처절한 희망의 이야기라고 해요. 

 

엘리 비젤의 '나이트'. 

 

재미있지 않아요. 유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꼭 읽기를 바라는 책입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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